Focus Section 4. 저주와 메시아닉 유대인

내가 정하여 준 규례를 지키지 않고 내가 세워준 법도를 싫어하여 나의 모든 계명을 그대로 실천하지 않고 내가 세운 언약을 어기면…. (레위기26:15)

포커스 섹션 4번으로 가겠습니다. 조금 다른 부분으로 가죠. 복과 저주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으면 우리는 복보다 저주가 더 많이 귀에 들어오죠. 저주라는 말 자체가 갖는 부담감이 있고 두려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비교해 보면요, 하나님은 복에 대해서 더 많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더 강조하고 계세요. 음, 그러니까 하나님의 뜻은 저주하고 벌 주시는 게 아니고 우리를 복 주시고 우리를 살리시는 게 뜻이다라는것을 이제 여기에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실제적으로 오랜 이스라엘의 역사는 끊임없는 하나님의 이 언약에 대한 파기의 그 비극을 알고 있어요.

이제 우리가 티셔 베아브 또 이제 여러 가지 비극적인 하나님의 이 저주가 내렸던 날들에 대해서 우리가 함께 이제 기도하는 시간도 갖게 될 텐데요., 그런데 아까도 말씀드렸습니다만 교회는 이것을 하나님의 저주, 그리고 마지막에 AD 70년에 있었던 예루살렘 성전의 멸망과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흩어짐과 지난 2천 년간의 이 고난과 고통을 하나님의 저주와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의 자격,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자격을 상실한 것으로 항상 가르쳤고 이해시켜 왔습니다. 그리고 그런 사이에서 교회가 이스라엘의 지위, 하나님의 백성의 지위, 하나님이 선택한 백성의 지위를 교회가 가져왔다고 설명을 했어요. 이게 대체됐다고 하는 것입니다.

근데 중요한 것은 여러분, 우리가 레위기 읽어보고 다 읽어보지만 하나님은 아예 선언하셨어요. 그런 일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한번 하나님 약속하시고 그 약속을 변하지 않으세요. 그래서 이 부분 제가 예전에 한번 어떤 신자하고 얘기했더니 "아, 하나님이 하신 일 아니냐"고, "교회를 선택하시고 이스라엘 버리신 거 하나님이 하셨는데 뭘 그걸 가지고 따지냐" 그러는데, 누구 마음대로 하나님이 하셨어요? 하나님이 하셨다고 얘기한 적 없어요.

우리 교회가 선택되지 않았다는 게 아니라 하나님은 예수를 믿는 이방인의 선택을 위해서 당신의 백성을 버린 것이 아닙니다. 그게 바로 로마서가 얘기하고 있는 사도 바울의 섭리 아닙니까? 이렇게 얘기하잖아요. 이스라엘의 완악해짐 때문에 너희가 구원을 받았으면 이스라엘의 충만함이 임하면 얼마나 더 큰 은혜가 있겠느냐, 그러면서 이스라엘의 충만함을 위해 기도하라고 얘기하는 이 로마서의 가장 중심적인 가르침이 있어요. 그래서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 그 유대인들의 시기심을 통한 이 이방인의 구원은 결국 이스라엘의 구원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하는 구원의 완성에 대한 강력한 소망이 바로 메시아닉 소망입니다.

메시아닉 소망이에요. 사도 바울은 이방 유대인의 것을 뺏어서 이방인에게 주는 그러한 이제 새로운 종교로서의 기독교를 얘기한 게 아니라 결국 하나님께서 주신 유대인의 소망, 유대인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통해서 온 세상을 구원하신다고 하는 하나님의 소망이 이제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이방인이 구원받지만 결국 그 이방인의 구원은 장차 누구의 구원으로 완성되게 된다? 이스라엘의 구원으로 완성되게 된다라는 것을 이 사람은 아주 강력하게 이야기하고 있는 거죠. 그래서 로마서를 잘 읽어 보시면요, 결론이 뭐냐면 그러므로 헌금하라고, 예루살렘을 위해 가난한 자를 위해 동참해라는게 로마서의 핵심적인 가르침입니다. 그니까 앞에 있는 신학적인 모든 이야기가 결론적으로 뭐냐면 왜 이방인들이 예루살렘을 축복해야 되나, 왜 유대인을 축복해야 되나 대한 그 말씀이에요. 사실 이방인들 입장에서 예수 안 믿고 예수 믿는 사람 핍박하는 유대인들 보면 꼴 보기 싫었을 거 아니에요, 그때도.

그러나 사도 바울은 이러한 이방인들에게 왜 우리가 여전히 유대인을 축복하고, 유대인을 위해서 기도하고, 유대인을 위해서 헌금해야 되는지를 가르쳐 주고 있는 거죠. 오늘 지금 우리가 바로 그 신학에 대해서 얘기하는 거예요, 그 신학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습니다. 자, 이제껏 우리가 알아왔던 내용 속에서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신 적이 있느냐, 성경 어느 구절에도, 어느 구절에도 하나님께서 그들을 영원히 버리신다 하지 않으셨고, 아까 우리가 읽었던 26장 40절 이하를 보시면 더 정확하게 결국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고난과 고통 속에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약속을 그들의 회개 속에서 기억하시겠다라고 말씀 하셨어요.

하나님께서 왜 이스라엘 백성에 그토록 토라를 지키라고 하셨는데, 이 토라를 없이 하실 생각을 하시겠습니다. 그래서 메시아닉 유대인들은 그렇지 않다라는 것을 유대인에게 증거하고, 예수와 예수의 제자들은 절대로 율법을 없애려는 사람이 아니다는 걸 증거하고, 또 반대로 또 크리스천에게는 하나님 주신 토라는 결코 그렇게 대체되거나 없어질 수 없다라는 것을 또 증거하는 그러한 영적인 교량의 역할을 하려는 게 바로 메시아닉 유대인들의 신학적인 입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