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Section 1. 배우기 위해 학습하기, 행하기 위해 배우기 너희가, 내가 세운 규례를 따르고 내가 명한 계명을 그대로 받들어 지키면.... (레위기 26:3)

오늘 포커스 섹션 1번, 배우기 위해 학습하기, 행하기 위해 배우기.

여러분이 라쉬가 이 말씀을 해석할 때 첫 번째 베후코타이라고 하는 특별히 규례 안에서 행한다, 규례 안에서 걷는다고 얘기한 이 말씀을 토라를 연구하는 것이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이게 굉장히 중요한 개념이에요. 유대인들이 첫 번째 행동 이전에, 그러니까 우리가 무엇을 행하고 무엇을 하기로 결정 이전에 먼저 알아야 되는 것은 뭐냐면 토라의 계명을 아는 것입니다. 공부하는 거예요.

그래서 토라의 계명 없이 우리 양심에 맞게 행동할 때는 문제가 생겨요. 그니까 아까 얘기한 대로 우리 이성이 지지하는 것만 하고 우리 이성이 지지하지 않으면 하지 않는다라는 이러한 이성의 기준한 그러한 하나님 말씀 읽기와 공부와 순종하기 하는 것은 제한이 있다라는 거죠.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토라 공부에 앞서서 기도하는 기도 속에 "토라를 오직 토라를 위해서 학습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라는 말이 나온 근거가 이 말씀이에요. 오늘 바로 이 말씀 때문에 그런 기도를 하는 겁니다.

토라를, 토라가 주시는 그 토라의 명령 자체를 알고 깨닫기 위해서 공부하게 하소서라는 거죠. 그 얘기는 나의 생각을 지지하기 위해서, 프루브 텍스트로 토라를 찾는 게 아닙니다. 되게 우리 보면은요, 어떤 신학적인 입장이나 어떤 주장을 하기 위해서 노란색, 빨간색으로 하이라이트 하면 성경에 밑줄 긋는 부분 있잖아요. 사실 그것은 그 성경의 말씀을 지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의 생각을 지지하기 위해서 성경을 프루브 텍스트로 사용하는 거죠.

그게 아니라는 거죠. 토라를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으로 알고, 그 말씀을 그대로 받게 하소서, 토라만을 위해 학습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라는 기도문이 바로 여기서 나왔어요. 이게 라쉬의 해석이고, 이 라쉬의 해석으로부터 토라를 공부하는 자세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주에 얘기한 그 후카의 의미와, 그리고 오늘 얘기한 베후코타이, 규례라 하는 걸 통해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계명을 먼저 우리에게 적시하다, 사실은, 어, 시대와 정황과 우리 자신의 개성을 따라서 성경을 논하지 말고 하나님이 주신 말씀 그대로를 먼저 공부하고 이해하라는 의미가 그 안에 깔려 있습니다.

네, 사실 그런 차원에서 보게 되면 여러분, 그 조금 있다 우리가 더 얘기하겠지만, 이 야고보의 말씀이 굉장히 깊은, 깊은 의미가 있어요. 자, 그런데 그 전에 두, 번째 계명을 지킨다고 하는 것은 무엇이냐, 이어지는 계명을 지킨다는 말씀은 토라의 계명을 어떻게 올바르게 지키는지 배우는 것이다라는 거죠. 우리 마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정하신 그 지키는 법을 배우는 거고요. 그리고 계명을 실행한다는 것은 아는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아는 것을 실제로 행하는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아는 것은 힘이다라고 그러니까 누가 그러더라고요. 아는 것을 행하는 것이 힘이다 그러더라고요. 그것까지 알아요. 아는 것을 행하는 것이 힘이라는 것까지 아는데 그것도 알고 말아요.

그것도 아는 데서 그렇죠. 예, 아는 것을 행하는 것이 힘이다 것을 알아요. 근데 그리고 알고 말아, 그게 아니라 아는 것을 행하는 것을, 것이 힘인 것을 아는 것을 행하는게 힘이에요. 하나 더 갈까요? 하나 또 갈까요? 우리 끝까지 계속 우리가 토톨로지 들어가는 거야, 계속 토톨로지.

그 또 우리는 아는 것을 행하는 것을 아는 것이 힘인 것을 또 아는 것을 그냥, 그냥 아는으로 그냥 끝낸다는 거죠. 그니까 요즘 저 토라 공부 많이 하시는 분들 있어요. 여기에 여러 과목을 공부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저한테 이렇게 얘기하세요. "목사님, 머리 회로가 꼬이는 거 같아요." 그래요, 너무 많이 공부하다 보니까 막 그 토라와 지혜와 막 신약이 막 춤을 추다가 어질어질해, 이렇게 얘기하시는 분도 있는데 여러분, 아는 것은 참 좋은데요.

아는 것을 우리가 우리의 삶과 예배와 우리의 가정과 공동체로 행하는 것이 진짜 중요합니다. 그게 중요해요. 그런 의미에서 오늘 야고보서가 얘기하는 말씀은 정말 중요하죠. 여러분, 야고보서가 우리 그 신약에서 사실 차별받는 말씀이었던 거 아시죠? 이게 소위 말해서 이신 칭의를 얘기했던 루터 신학과 맞선 거다라고 그래가지고 기독교 이 주의 교단은 야고보서를 굉장히 이렇게 째려 봤어요.

이렇게 똑바로 안 보고, "아, 이거는 조금 복음이 아니잖아. 이건 좀 복음하고는 좀 떠나 있는 행위를 강하는거 아니야"이렇게 얘기했는데 토라를 공부하고 야고보서를 공부해 보면요 야고보서야 말로 정말 이 토라의 정신을 너무나 정확하게 얘기하고 있어요. 오늘 배운게 딱 야고보서에 나와 있는거예요

야고보서 1: 21~25

그러므로 더러움과 넘치는 악을 모두 버리고 온유한 마음으로 여러분 속에 심어주신 말씀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 말씀에는 여러분의 영혼을 구원할 능력이 있습니다. 말씀을 행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그저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말씀을 듣고도 행하지 않는 사람은 있는 그대로의 자기 얼굴을 거울 속으로 들여다보기만 하는 사람과 같습니다. 이런 사람은 자기의 모습을 떠나가서 그것이 어떠한지를 곧 잊어버리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완전한 율법, 자유를 주는 율법을 잘 살피고 끊임없이 그대로 사는 사람은 율법을 듣고서 잊어버리는 사람이 아니라 그것을 실행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그가 한 일에 복을 받을 것입니다.,

여러분 이부분 보세요 완전한 율법 자유를 주시는 율법 완전한 토라 곧 자유를 주시는 토라를 잘 살피고 끊임없이 그대로 사는 사람은 토라를 듣고서 잊어버리는 사람이 아니라 그것을 실행하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오늘 야고보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가 얘기하고 있는 게 오늘 레위기 말씀을 하고 있어요. 베후코타이 공부했어요. 이는 베후코타이를 정확히 이해하고 우리에게 베후코타이가 얘기하는 이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는 토라 약속 안에 약속된 복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자, 여러분, 오늘 다시 한번 야고보서가 얘기하는 이 베후코타이를 다시 한번 듣는 저와 여러분이 됐으면 좋겠습니다.